국민연금, 미래 불안 조장이나 세대 갈라치기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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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찬섭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오마이뉴스 연속기고. 2022년 2월 24일. 기사원문보기

[노후불안 처방전, 국민연금 강화④] 재정안정과 보장성 강화 동시에 가능하다

최근 공적연금 개혁이 화두가 되고 있다. 이 논의는 환영할 만한 것이지만 그 내용은 지나치게 재정안정론에 경도되어 있다. 우선 재정안정론자들은 연기금 소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데 이는 지나친 것이다. 2018년의 4차 재정계산에서 2057년 기금소진이 예측된 것은 맞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 증명이 아니다.

연금재정계산은 70년이라는 매우 긴 기간을 대상으로 하고 그 기간의 경제성장률, 출산율 등 수량화 가능한 몇 가지 지표들의 변화를 투입하여 이루어지는데 이때 정치나 경제부문의 제도 변화 등 수량화 불가능한 변화는 반영하지 못한다. 이는 마치 1952년의 시점에서 그 이후 일어난 정치적 격변이나 경제적 변화는 모두 제쳐둔 채 수량화된 몇 가지 지표의 변화만 가정하여 2022년을 예측하는 것과 같다.

게다가 연금재정계산에서는 국민연금의 현행 제도가 70년 동안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한다. 이런 계산에 만일 우리나라 최고 기업인 삼성을 투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삼성의 현행 지배 구조와 경영방식을 70년 동안 변화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성장률 등 주요 사회경제 변수들을 변화시킨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어떤 결과가 나오든 아마도 사람들은 그 전제, 즉 삼성이 향후 70년 동안 현재의 경영방식이나 지배 구조를 하나도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전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고 따라서 그 결과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을 불합리하다고 할 것이다. 이는 국민연금에도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연금제도에 대한 미래세대 불신 조장하는 무책임한 태도


▲ 국민연금이 노후에 도움이 될까?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노인들에게 자식에게 국민연금 추천하는지 인터뷰하고 영상을 제작/게시했다. ⓒ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어느 나라든 연금의 장기재정추계에서는 기간의 장단이 있을 뿐 기금소진 결과가 나온다. 우리의 4차 재정추계와 같은 해인 2018년에 연금재정추계를 한 미국의 경우 2034년 기금소진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연금재정추계는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가정할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를 그야말로 추정한 것이어서 연금제도 개선을 위한 참고용으로 사용해야지 이를 기정사실화하여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은 오히려 제도 개선을 가로막을 우려가 있다.

재정안정론자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연금기여금을 올리지 않으면 그것은 현세대의 무책임이며 미래세대에 대한 부담 전가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른바 부과방식 비용률을 거론한다.

이것은 연기금이 소진되면 재정방식이 적립방식에서 부과방식으로 전환되고 그런 상태에서 연금급여 지급을 위해 납부해야 하는 기여금의 규모를 말한다. 재정안정론자들은 이 규모가 임금의 30%에 달할 것이라고 말하면서(연금기여금은 사업주와 노동자가 절반씩 내므로 실제로는 15%이다) 현세대는 9%를 내는데 미래세대는 30%를 내게 하는 것이 공평한가라고 묻는다.

물론 4차 재정계산에서 부과방식 비용률이 임금의 30%로 추정된 것은 맞지만 이 경우에도 연금재정계산이 국민연금의 현행 제도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전제를 한 것임에 주의해야 한다. 현재 연금기여금은 주로 근로소득에만 부과된다. 하지만 앞으로 30년 후 혹은 40년 후에도 우리가 연금기여금을 근로소득에만 부과할 것인가? 또 그때도 연금수입을 기여금만으로 충당할 것인가? 참고로 독일은 연금수입의 25%를 조세에서 충당한다.

다가올 시대에는 근로소득만이 아니라 주식이나 펀드 등 금융자산에도 로봇에도 그리고 플랫폼에도 기여금이 부과되어야 할 것이며 그렇게 될 것이다. 또 조세수입에서 연금수입을 충당할 수 있고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더라도 근로소득에 대한 부담은 크게 하락할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지 않고 부과방식 비용률이 30%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별 근거 없이 연금제도에 대한 미래세대의 불신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태도이다.

현세대도 그렇지만 미래세대도 계층적으로 단일하지 않다. 이처럼 세대는 계층적으로 단일하지 않은데 재정안정론자들은 마치 어떤 세대가 모두 단일하게 어떤 부담을 주고받는 것처럼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현세대 책임이라고 말하지만 현세대의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진다는 말인가?

아무리 소득이 많아도 월 524만 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연금기여금을 납부하지 않는데 그리고 지금도 자본은 플랫폼 기업 등 각종 수단을 동원하여 사업주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데 이런 문제들을 놔두고 기여율만 올리면 이것이 세대책임을 다하는 것인가?

우리 모두의 집합적 자산인 국민연금을 믿고


▲ 2019년 3월 13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국회에서 가입자(직장, 지역), 수급자, 비수급자, 청년, 여성, 노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여 “국민이 말하는 국민연금 개혁” 집담회를 개최했다. ⓒ 참여연대

연금에서 재정은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수단이다. 공적연금의 본래 목적은 노후소득보장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급여수준은 평균임금 대비 31.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42.2%(의무가입 민간연금 제외)보다 10%포인트 이상 낮아 보장성이 매우 취약하다. 재정안정론자들은 이런 낮은 보장성을 두고서도 이것이 연금재정의 불안정을 가져오므로 기여금을 인상하자고 한다.

하지만 삶의 안정을 위해 여전히 사적인 지출이 많은 현실에서 기여금의 인상은 쉽지 않고 더욱이 20~30대 청년층은 더욱 어렵다. 보장성 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연금기여금 인상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적정급여수준의 보장과 함께 기여금의 단계적 인상을 주장하는 것이다. 복지혜택을 받은 경험이 없어서 세금 인상이 어렵다고 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적정급여보장을 우선하고 기여금을 인상하는 전략이 더 적절할 것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시대에는 집합적 대응이 최선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불안하다고 해서 성급하게 세대부담을 내세워 재정안정만 추구하면 제도의 본래 목적이 상실될 우려가 있다.

마침 지금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은 지난 10년 이래 거의 최고 수준이다. 작년 7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결론에 따르면 2020년 연금기금운용수익은 72조 원으로 연금기여금 수입 51조 원의 1.4배이며 수익률은 9.58%이다. 원금의 1.4배를 운용수익으로 내는 민간금융기관이 있는가? 이는 우리가 국민연금이라는 집합적인 제도를 공적으로 운용하는 데서 얻는 우리 모두의 집합적 수익이다.

언론은 국민연금이 수익을 내는 것을 잘 보도하지 않으며 조그마한 손실을 크게 부풀려 보도하는 경향이 있지만 국민연금은 수익을 잘 내고 있는 우수한 공적 투자자이며 우리의 집합적 자산이다. 이런 집합적 자산을 민영화한 나라들이 남미에 있었는데 이들이 최근 다시 공적연금으로 회귀하고 있다. 연금민영화로 민간보험시장이 독점화하고 금융자본만 이득을 얻고 국민들은 연금급여의 하락과 젠더 및 계층 불평등 악화 등 부정적 결과가 나와 다시 공적연금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연금민영화가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근거없이 연금의 재정불안을 부추기거나 세대 갈라치기를 하기보다 우리 모두의 집합적 자산인 국민연금을 믿고 보장성과 재정안정을 동시에 이룰 방안을 차분히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