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에서 퇴직 이후를 대비한 국민연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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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계산이 우리의 앞날을 말해줄 수 있을까?

남찬섭 교수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국민연금은 공적연금이다. 정부가 운영하니까 사적연금이나 민간연금이 아니라 공적연금이다. 그런데 왜 정부가 연금을 운영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에 공적연금의 본질적 성격이 담겨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일정연령이 되면 퇴직을 하기 때문에 퇴직제도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상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퇴직은 단순히 일을 그만 둔다는 것이 아니라 근로능력과 근로의사에 무관하게 일정연령이 되면 일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의미의 퇴직은 자본주의 이전에는 사실상 없었다. 우선 자본주의 이전 사회는 농업사회여서 가정과 일터의 구분이 불분명했고 따라서 퇴직이라는 개념도 분명치 않았다. 또 더 중요하게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래서 퇴직은 극소수의 귀족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이었지 보통사람들 대부분은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물론 보통사람들 중에도 좀 오래 살게 된 사람들은 기력이 쇠해져서 일을 못하게 되는 경우 자식들이 부양을 했다. 그때는 확대가족이었기 때문에 자식들의 개별적 부양이 가능했고 또 그런 개별적 부양이 보편적이었다.

자본주의가 출범하고부터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는 공업을 중심으로 하고 기계에 의해 생산이 이루어지는 경제체제이다. 그래서 기계를 시간당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시키는가가 이윤을 얻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제 동작이 느린 고령 노동자들은 자본의 이윤추구에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변화하게 되었고 자본은 이들을 내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노후소득보장책이 없는 상태에서 이들을 내보기가 쉽지 않았다. 자본은 퇴직제도를 도입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웠고 자식들은 예전처럼 나이든 부모를 개별적으로 부양해야 했다(하지만 그런 개별적 부양은 충분치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는 가운데 19세기 후반에 들어가면서 영국에서 민간의 대기업과 정부부문을 중심으로 연금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정부는 업무효율화를 위해 공무원과 경찰, 교사, 구빈담당 공무원, 공공부문 사무직 종사자 등에 대해 연금제도를 도입하고 이를 기반으로 퇴직제도를 도입했다(퇴직연령은 직무마다 제각각이었다). 지불능력이 있는 대기업들도 각자 나름의 퇴직연금을 도입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퇴직제도를 운영했다. 하지만 19세기 말 당시 퇴직을 전제로 연금을 받는 인구는 영국 전체 인구의 5% 정도에 불과하여 보편적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 전반적으로 19세기 말에 빈곤문제가 심각해졌는데 이때 빈곤의 피해를 가장 극명하게 겪은 세대가 노인세대였다. 그래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유럽 각국은 일반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금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그 이전에 공무원이나 교사, 경찰 등을 대상으로 도입된 공적연금(직역연금)이나 민간의 대기업들이 도입한 연금(퇴직연금)과 달리 보통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도입된 공적연금이었다. 그리고 보통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러한 공적연금은 2차 대전 후에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러면서 퇴직제도도 보편화하였다. 퇴직제도의 보편화와 공적연금의 본격화는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서로가 서로를 전제하는 것인데 이것이 퇴직을 하지 않는 기업이 공적연금 보험료의 일부를 부담하게 된 중요한 배경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연금수급연령이 65세로 정해지면서 이 나이가 노인연령기준이 되었다. 이 65세라는 기준은 생물학적・의학적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서구사회가 2차 대전 후에 연금수급연령을 65세로 택하면서 정해진 것이다. 즉 그것은 과학적 근거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정해진 사회적 산물이다. 따라서 65세라는 연령기준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며 사회경제적 여건이 변하면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도입된 공적연금은 과거에 개별가정에서 부모를 부양하던 방식을 그대로 채택하였는데 다만 이것을 사회 전체로 확장하였다. 즉 모든 자식세대가 모든 부모세대를 부양하는 방식으로 확장하였다. 그래서 공적연금은 개별적 부양을 집합적 부양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부양방식을 이렇게 전환한 것은 퇴직이 보편화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이전에는 퇴직이 없었고 자본주의가 출범한 후에도 한동안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퇴직이 없었다. 그래서 이때는 개별적 부양이 적용되었다(정부부문과 대기업에 속한 5% 가량의 인구는 제외하고).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퇴직이 보편화하면서 개별적 부양으로는 퇴직세대의 부양이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부양방식이 집합적 방식으로 전환된 것이고 이런 집합적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강제가입방식을 택하고 기업으로부터도 돈을 걷고 정부가 그 운영을 맡게 된 것이다.

과거에 개별가정에서 자식이 개별적으로 부모에게 생활비를 주었다면 공적연금에서는 그 사회의 모든 자식세대가 국가에 돈을 내고 국가는 그것을 모아서 매달 모든 부모세대에게 생활비를 지급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자식세대가 매달 돈을 내서 모든 부모세대에게 생활비를 지급하는 방식을 부과방식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공적연금이 도입되기 전에 인간들이 개별가정에서 부모를 부양하던 방식도 부과방식인 셈이다. 극히 일부의 부모가 나이들기 전에 돈을 좀 모아놓을 수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그렇게 할 수 없었고 이는 지금도 비슷하다.

공적연금이 도입될 당시 서구사회도 개별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개별적 부양이 존재하였다. 그래서 공적연금을 처음 도입하게 되면 그 당시 자식세대는 개별적 부양도 해야 하고 공적연금에 보험료도 내야 한다. 따라서 공적연금을 처음 도입할 때는 보험료를 높게 설정하기가 어렵다. 모든 나라가 보험료를 낮게 책정해서 제도를 시작하고 그래서 공적연금이 개별적 부양을 점차 대체해나가면서 그에 따라 보험료를 인상한다(국민연금도 마찬가지다). 공적연금 초기에 보험료가 낮고 급여수준이 좀 높다고 해서 이를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공적연금 도입 당시 개별적 부양과 집합적 부양이 공존하고 따라서 보험료가 초기에 낮다는 것은 그만큼 개별적 부양 부담이 컸다는 사실을 간과한 주장이다.

국민연금도 집합적 부양제도이기 때문에 여느 나라의 공적연금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운영된다. 즉, 국민연금에 가입한 모든 세대가 매달 보험료를 내면 그것을 가지고 국가는 매달 퇴직한 세대에게 연금으로 지급한다. 즉 부과방식으로 운영된다. 우리 국민들은 많은 경우 내가 매달 내는 보험료가 정부 내에 있는 나의 국민연금 개인계좌에 원금으로 들어가고 거기에 운용수익이 쌓였다가 나중에 퇴직하면 원금에 수익금을 합쳐 찾아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기금소진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이미 연금을 받는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된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개인계좌 방식이 아니며 저축이나 적금이 아니다. 국민연금공단은 가입자의 근로이력은 관리하지만 개인계좌를 개설해두지는 않는다.

만일 개인계좌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가입자가 낸 돈을 적립했다가 수익금을 붙여 찾아가게 한다면 그게 바로 연금민영화이다. 연금을 민영화한 나라들이 이렇게 운영한다. 만일 개인계좌를 개설해두면 재분배는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모든 자식세대가 모든 부모세대를 부양하는 방식도 작동이 불가능하게 된다. 왜냐하면, 개인계좌방식에서는 모두가 각자 자기가 모은 돈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식이면 이를 굳이 국가가 운영할 이유가 없다. 또 이런 방식에서는 노인빈곤을 없애기 어렵다. 중산층 이하 소득자는 많은 돈을 모아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 중 많은 사람들이 국민연금을 개인계좌방식처럼 생각하는 것에는 기금이 있다는 점도 한 원인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국민연금은 개인계좌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금도 그런 개인계좌를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물론 기금에 가입자들이 낸 돈이 들어가는 것은 맞다. 즉, 내가 매달 내는 돈은 지금 연금을 받는 퇴직세대에게 곧바로 지급되지만 그러고도 돈이 남으므로 그 남는 돈이 기금으로 들어가기는 하는데 그렇지만 그것이 나의 개인계좌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냥 하나의 큰 기금에 다른 모든 가입자들이 낸 돈(그 돈도 지금의 노인에게 연금지급하고 남은 돈이다)과 함께 섞여서 들어간다. 그러면 기금은 왜 쌓는 것인가?

국민연금을 처음 설계할 당시 제도설계자들은 베이비붐 세대가 퇴직하는 시기가 되면 고령화가 진행될 것으로 예측하고 고령화가 되면 그때의 근로연령인구가 내야 할 보험료가 인상되어야 할 것인데 그 보험료 인상속도를 좀 천천히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금을 적립토록 하였다. 즉, 인구고령화의 충격을 완충하기 위한 완충용으로 국민연금기금을 조성케 한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완충기금으로 만든 것이 국민연금기금이기 때문에 완충역할을 다하면 그것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금이 소진된다는 것은 고령화의 완충기금으로서 수행해야 할 역할을 다했다는 의미이다. 흔히 재정론자들이 주장하듯이 국민연금의 재정수지가 불균형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국민연금공단이 내가 낸 돈의 원금마저 다 날려서 소진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연금은 개인계좌방식도 아니고 적금도 아니기 때문에 내가 낸 돈의 원금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낸 돈은 지금의 노인들에게 곧바로 들어가고 그러고도 남는 돈이 다른 사람들이 낸 돈과 함께 섞여서 기금에 들어간다.

그런데 우리는 국민연금을 시행한 지 10년만에 IMF 외환위기로 커다란 경제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 정도 후부터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초장기간의 초저출산으로 고령화가 당초 예상보다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외환위기나 초장기간의 초저출산은 국민연금의 제도설계자들이 예측하지 못한 것들인데 이는 누구라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초장기간의 초저출산으로 인한 빠른 인구고령화로 기금의 완충역할기간을 당초 예상보다 더 길게 가져가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즉 기금소진시기를 더 많이 늦춰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대책이 기금수익을 지나치게 추구하거나 국민연금의 개인계좌방식으로의 전환, 즉 연금민영화가 될 이유는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국민연금이 공적연금으로서 가진 집합적 부양방식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그래야 고령사회를 우리가 버텨낼 수가 있다. 앞으로 평균수명이 길어지기 때문에 퇴직제도는 어떤 형태로든 유지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노후소득보장의 중요성도 더 커질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미래세대의 부양부담이 너무 늘어날 것인데 그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의문은 인구고령화라는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제기되는 것이기도 하다. 또 5년마다 실시하는 국민연금 재정계산에서 인구고령화는 변할 수 없는 미래로 그려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국민연금 재정계산이 우리의 미래를 정말로 잘 그리는가? 그렇지 않다. 첫째로 인구고령화에 대해 생각해보자. 현재 국민연금 재정계산은 70년 기간을 대상으로 실시하는데 이런 재정계산의 결과는 인구고령화 전망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앞에서 65세라는 노인연령기준은 과학적 근거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미래에 노인인구가 많아진다는 것은 이 65세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미래에 노인인구가 많아진다는 것은 사실은 65세 이상 인구가 많아진다는 것일뿐 정말로 노인이 많아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재정계산은 노인연령기준이 앞으로 70년 동안 계속 65세일 것이라고 가정한 상태에서 행해진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는 노인연령기준 자체가 바뀔 수 있고 또 바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재정계산에서 말하는 노인인구비중도 부양비 수치도 다 달라지게 된다. 그게 달라지면 인구구조 전망치 자체가 다 바뀐다.

둘째로 재정계산은 기금운용수익률을 낮게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작년에 실시한 5차 재정계산에서는 미래의 기금수익률을 4.5%로 가정하였다. 하지만 1988년부터 2023년까지의 평균수익률을 보면 5.92%로 재정계산에서 가정한 수치보다 1.42%포인트 높다. 또 2000년부터 2021년까지의 평균수익률은 6.46%로 재정계산에서 가정한 수치보다 1.96%포인트나 더 높다. 기금수익률을 5.92%로 가정하고 기금 추계의 출발점을 2023년도 적립금인 1,036조원으로 가정하면 현행 소득대체율 40%와 보험료 9%에서도 기금소진연도가 2063년으로 5차 재정계산에서 추정된 2055년보다 8년 연기된다. 또 기금수익률을 6.46%로 계산하면 기금소진연도는 2067년으로 12년이 연기된다. 그리고 이 시점들이 도래하기 전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기금소진연도는 2070년대 이후로 연기되어 완충역할을 더 오래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2070년대 이후로 넘어가면 노인연령기준을 65세로 가정하더라도 인구구조가 안정화된다. 따라서 그 시점까지 기금의 완충역할과 여타 다른 조치들을 결합하여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면서 국민연금제도를 잘 운영할 수 있다.

위에서 본 두 가지 사실들을 보면 재정계산이라는 것이 약간의 수치가 달라짐에 따라 그 결과가 얼마나 많이 바뀔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재정계산은 불확실성 하에서 미래를 추정하는 것이지 미래를 증명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재정계산에서 도출된 70년 후의 결과를 놓고 이를 지나치게 기정사실화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다.

또 국민연금을 마치 내가 낸 돈이 국민연금 개인계좌에 원금으로 들어가고 거기에 수익이 붙어 나중에 찾아가는 적금이라고 전제하는 것이나 기금소진을 마치 국가가 가입자들의 원금마저 날린 것인양 말하는 것 역시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그것은 집합적 부양제도로서의 국민연금의 성격을 완전히 왜곡하는 것이다. 공적연금을 운영하는 많은 나라가 재정계산을 하지만 재정계산 결과를 가지고 우리처럼 호들갑을 떠는 나라는 없다. 우리는 왜 우리나라에서만 이렇게 기금소진 공포론이 기승을 부리는지, 공적연금을 운영하는 본질적 목적은 왜 논의되지 않고 돈만 이야기하는지 거꾸로 물어봐야 한다. 지금처럼 소득대체율을 떨어뜨리면 현 청년세대가 노인이 되는 2050년대와 2060년대에도 연금액은 현재가치로 계산했을 때 월 6,70만원 정도밖에 안된다. 국민연금으로 그래도 100만원 이상 받는 노인이 많은 경우와 국민연금으로 겨우 6,70만원 받는 노인이 많은 경우 중 어떤 경우에 미래세대의 부담이 덜 하겠는가?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 그리고 자본주의 등장 후에도 한동안은 퇴직이 없었다. 이런 시대에서는 개별적 부양이 보편적이었다. 그러다가 퇴직이 보편화한 시대에는 부양방식이 국가의 개입 하에 집합적 부양으로 전환되었다. 개별적 부양과 집합적 부양은 둘 다 자식세대가 부모세대를 부양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방식이다. 다만 국가가 그것을 매개하는가 여부에서만 차이가 있다. 공적연금이 보편화한 후 평균수명이 더 늘었고 노인인구도 더 늘어났다. 퇴직이 없던 시절에 개별적 부양이 있었고 퇴직이 보편화한 시절에 집합적 부양이 있었다면 노인인구가 더 많아지고 수명이 더 길어지는 미래에는 어떤 부양제도가 필요할 것인가?

수명이 길어지면 퇴직은 더 중요하고 노후소득보장도 더 중요해진다. 따라서 집합적 부양으로서의 공적연금의 성격은 더 필요해질 것이다. 하지만 노인인구가 더 늘어날 것이므로(노인연령이 조정되어도 더 늘어나는 것은 맞다) 미래의 공적연금은 자식세대가 부양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산이 많은 노인 및 비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을 부양하는 계층간 부양의 성격이 더해질 필요가 있다. 공적연금에 국고가 지원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고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이미 국고를 많이 투입하고 있다. 그렇게 하여 집합적 부양이라는 성격을 더 강화하는 것이 미래의 고령사회를 지속가능한 사회로 만드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