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보장 강화하고 지속가능 개혁, 포기 이르다

268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오마이뉴스 연속기고. 2022년 2월 17일. 기사원문보기

[노후불안 처방전, 국민연금 강화③] 노후에 기댈 언덕 국민연금


▲ 2020년 4월 9일 국회 앞에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참가 단체가 21대 국회에 “모두에게 충분한 공적연금 지급 보장”을 요구했다. ⓒ 참여연대

지난 대통령 TV 토론에서 여야 대선후보 모두 연금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가 높은 노인 빈곤과 급속한 노령화라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과제다. 국제적으로도 급여 적절성, 대상 포괄성, 재정 지속성이 연금개혁의 주요 원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다들 재정안정만 강조하는 모양새다. 특히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지난 총·대선 당시 제시했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은 폐기하고, 보험료 인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국민연금은 재정수지 불균형이 심각하다고 진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대규모 재정지출에 반대하는 이들은 적자재정과 국가부채로 미래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떠넘긴다고 비판한다. 80년대부터 영국과 미국 등에서 재정균형과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면서 공공지출과 복지를 공격하던 시각이다.

이런 접근은 연금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90년대 초반 세계은행은 세대 간 부담과 수혜의 보험 수리적 공평성을 기준으로, 부과방식 공적연금은 구조적으로 심각한 재정 불균형 문제를 내재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다층연금체계로 전환하는 구조개혁을 제시했다.

이는 한국의 연금개혁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주류 인식이자, 국민연금 축소를 주장하는 핵심적인 근거다. “기금고갈”, “보험료 폭탄”, “미래세대 도적질” 등의 주장 역시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4차 재정계산의 70년 재정전망 기준으로 보면, 기금이 소진되지 않고 적립 배율(당해 연도 연급급여 지출) 1배 수준을 유지하려면 보험료율을 2020년 9%에서 16.02%로 한꺼번에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70년 일괄 해법이자, 보험 수리적인 단선적 해법이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도 어려울뿐더러, 지역 영세가입자와 저임금·비정규 노동자의 사각지대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금은 약 6천조(GDP의 99%)까지 쌓이다 급속도로 줄어들면서 유동성 위기뿐 아니라 금융시장의 변동성 위기마저 초래할 수 있다.

지난 4차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에서 수지 불균형 해소를 강조하는 이들조차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해서인지, 보험료율은 13.5%로 낮춰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대신, 수급연령은 67세로 상향하고 기대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자동으로 소득대체율을 더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소위 ‘더 내고, 덜 받고, 늦게 받는’ 방안이다. 어떤 식이든, 보험 수리적인 재정수지 균형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국민연금은 축소 일변도를 걸을 수밖에 없다.

급여 적절성 올리고 연기금 지속가능성 높인다

이와 반대로, 급여 적절성과 대상 포괄성을 전제로 장기적 재정 지속성을 모색하려는 접근이 있다. 지난 2019년 연금개혁 논의 당시, 사용자단체를 제외한 가입자단체는 소득대체율 45% 보장을 전제로,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10년 동안 12%까지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민연금이 애초 목적과 취지에 맞게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한편, 보험료 인상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지역가입자와 저임금노동자에 대한 지원확대를 전제하고 있다. 연금개혁은 한 번의 승부로 끝나지 않는 연속개혁이라는 점에서, 중장기 지속개혁을 위한 사회 제도적 토대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재정 불균형이 심각한데, 소득대체율을 인상하는 것은 미래세대를 갈취하는 이기적인 주장이라는 비난이 있다. 수지 균형을 강조하는 이들은 미래세대 부담만 강조하지, 미래세대도 국민연금을 통해 노후를 보장받는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

2028년 이후 국민연금에 처음 가입하는 청년과 미래세대는 300만 원 소득자가 매달 27만 원 보험료를(9% 기준, 노동자는 절반) 20년 동안 내더라도, 국민연금 급여는 53만 6천 원 밖에 되지 않는다.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1인 기준, 22년 58만 3천 원)보다도 낮은 셈이다.

가입자단체가 제시한 보험료 인상안은 급여확대분이지, 재정안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 또한 사실이 아니다. 70년 목표 추계 기준, 45% 소득대체율에 추가로 필요한 보험료율은 인상 시기에 따라 0.69~2.22%p 수준이다. 소진 시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재정안정 관점에서도 현행유지보다 6년이나 소진 시기를 늦춘다. 그렇게 비난하고 싶으면, 추계기간을 더 늘리자고 주장하면 된다.

사실 소득대체율을 45%로 하더라도, 급여 인상 효과는 크지 않다. 하지만 수지 균형을 강조하는 추가적인 급여삭감 조치를 예방하는 정치적 경험과 근거를 제공해줄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 연금개혁에서 역사상 최초로 가입자단체가(사용자단체 제외) 보험료 인상안을 제시했다는 점을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을 통해 노후소득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제도적 신뢰가 형성된다면, 장기적 재정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정치적 여건 또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기금고갈을 강조하며 불안을 자극하는 방식이 오히려 제도 불신을 부추기고, 심지어 심심찮게 국민연금 탈퇴 운동으로 이어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모든 일하는 사람이 사회보험 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수지 불균형 말고도, 국민연금은 고소득, 정규직 연금이라는 부당한 혐의까지 받고 있다. 국민연금은 약 2200만 명(남성 1200만 명, 여성 1000만 명)이 가입해 있다. 가입자 중 55.9%가 250만 원 미만이고, 66%가 300만 원 미만의 소득자다. 대다수 노동자 서민이 국민연금을 통해 노후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기여를 전제로 하다 보니, 저임금, 비정규직일수록, 작은 사업체에서 일할수록, 여성일수록, 저소득 지역가입자일수록 가입률이 낮다. 노동시장에서의 고용형태나 종사상 지위에 따른 차별적 구조가 국민연금 가입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국민연금의 의미를 부정하는 근거로 삼아서는 곤란하다.

예컨대 근로기준법이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는데, 이를 두고 안정적인 노동자만을 위한 제도이니 폐기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도 권리를 보장받도록 요구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만큼 보험료 지원이나 크레딧, 기초연금 강화 등이 중요하다.

하지만 10인 미만 사업장의 저임금노동자에 대한 보험료 지원은 36개월로 축소됐고,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 역시 어렵게 법이 개정됐지만, 납부 재개자만을 대상으로 극히 제한적인 지원만 하고 있다. 크레딧 개선 역시 계속 공회전 중이다. 아무런 제도적 조치 없이 재정 수지 균형이라는 제한적인 시각으로 보험료 인상만 주장한다면, 사각지대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노년부양비 증가, 보다 올바르고 부담가능한 방식을 고민하자

국민연금이 구조적으로 수지 불균형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은 자연스레 다른 제도, 즉 기초연금과 퇴직연금 강화에서 해법을 찾게 된다. 이른바 다층연금체계다. 기초연금은 중요한 보충적 수단이지만, 국민연금을 대체하는 중심 역할을 하기란 쉽지 않다.

제도 정합성 문제로 소득비례 연금보다 더 낮은 것이 일반적인 것을 고려하면, 기초연금을 대폭 인상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황당한 것은 국민연금을 미래세대 부담이라고 비판하면서 기초연금 강화를 강조하는 것이다.

기초연금 역시 해당 시기 경제활동인구가 세금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기여이력을 근거로 사회계약 형태로 수급권이 발생하는 국민연금과 달리, 기초연금은 정치적으로 취약하다.

이미 이전부터 저소득 집중 지원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재정축소 압박은 더욱 커질 것이다. 유사한 이유로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등도 1990년대 이후 기초연금을 축소해왔다.

게다가 국민연금 가입에 따라 기초연금이 최대 50%까지 감액되는 독소조항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2030년엔 감액 수급자가 74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기초연금은 현재의 노인 빈곤 해소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빈곤갭이 큰 한국의 노인 빈곤 특성상 40만 원으로 인상한다고 해도 빈곤율이 대폭 낮아지기 힘들다. 노인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부양의무자 폐지와 생계급여 기준 확대가 정공법이다.

정의당의 연금개혁 방안은 자평하듯이 ‘진보의 금기’를 깼다. 단순히 보험료 인상안을 제시해서가 아니라, 수지 균형의 입장에서 국민연금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 낡고 쉬운 주장으로의 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