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법률에 따라 행해지던 국민연금 재정계산이 올해로 제5차를 맞이한 가운데 국회연금개혁특위 일정과 맞물리면서 예년보다 이른 시기에 그 시산결과가 발표되었다. 매년 연금 재정계산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언론은 기금소진시점 등에만 과도하게 관심을 기울여왔다. 이로 인해 연금재정계산이 갖는 보다 넓은 함의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우를 범해왔다.
기금이 정말로 소진되는가?
기금소진 여부는 연금재정계산의 결과로 추정되는 것인데 이번 추계로 기금이 2055년에 소진되는 것으로 추정되었고 이는 지난 2018년의 제4차 추계 때의 2057년보다 2년 앞당겨진 것이다. 그런데 재정계산 자체가 한계가 있다. 재정계산은 지금부터 2093년까지 70년 동안 각종 주요 경제변수와 인구변수가 변동되는데도 국민연금은 현재 가진 제도 모습 그대로 전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국민연금의 재정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를 추정한 것이다. 따라서 기금소진은 추정상의 결과이며 입증된 사실이라 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현실에서 기금이 소진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기금이 소진되면 정말로 문제인가?
많은 사람들이 기금이 소진되면 연금을 못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번 재정추계결과 기금소진 후인 2080년에 연금지출은 GDP의 9.4%로 지난 2018년 제4차 재정계산 때와 동일할 것으로 추정되었다. 지금도 유럽 각국은 연금지출로 GDP의 10%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영국이나 독일, 스페인은 기금이 거의 없지만 그 나라 노인들 중 기금이 없어서 연금을 못받았다는 노인은 한 명도 없다. 2080년에 우리는 65세 이상 인구가 47.1%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정도 인구에게 GDP의 9.4%가 부담되어 연금을 지급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금소진 후에 엄청난 보험료? – 부과방식비용률의 오해와 실제
그런데 우리 언론은 GDP의 9.4%라는 수치를 이른바 부과방식비용률로 보도하면서 기금이 소진되면 월급의 30%를 보험료로 내야 할 것처럼 말해왔다. 이번 재정계산에서 이 비율은 2080년에 34.9%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어 이제 언론은 35%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부과방식비용률은 국민연금보험료 부과기반으로 계산된 (국민연금보험료)부과대상소득이 지금부터 70년 동안 변하지 않고 유지된다고 가정했을 때의 보험료이다.
현재 국민연금보험료 부과기반으로 계산된 (국민연금보험료)부과대상소득은은 GDP의 30%에도 못미친다. 그리고 이것은 주로 근로소득으로 한정되어 있다. 근로소득에 한정된 이 정도 규모의 소득에만 보험료를 부과하니 보험료가 35%나 되는 것이다. 노인인구는 늘어나는데 우리가 앞으로도 정말로 GDP의 30%도 안되는 소득 그것도 근로소득에 대해서만 연금보험료를 걷어야 할 것인가?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늘어나는 노인인구 부양부담을 얼마 안되는 근로소득에만 부과하는 것으로 실현가능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은 것이다.
이제는 연금보험료 부과대상소득의 크기 자체를 키워야 한다. 또 앞으로는 조세도 연금지출에 지원되어야 한다. 보험료에서만 연금지출비용을 충당하려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독일은 한해 연금지출의 1/4을 국고로 지원하고 있다. 연금보험료 부과대상소득을 넓히고 조세가 지원된다면 근로소득에만 부과되는 35%가 아니라 GDP 전체의 9.4%를 나누어 부담하게 될 것이다. 부과방식비용률이 아니라 GDP 대비 비용률을 봐야 하는 것이다. 공적연금 규모를 가늠하기 위해 많은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지표 역시 GDP 대비 비용률이다.
연금재정계산에서 부과방식비용률 35%가 보여주는 것은 앞으로는 월급의 35%를 연금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GDP의 30%에도 못미치는 소득에만 연금보험료를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며 조세도 연금지출에 지원해야 한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기금소진과 부과방식비용률만 앞세워 월급의 35% 보험료 운운하는 것은 미래세대를 겁박하는 것이자 재정계산이 주는 보다 큰 함의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이다.
기금을 쌓는 것이 정말로 연금을 지속가능하게 하고 미래부담을 줄일 수 있는가?
흔히 기금을 적립해야만 미래에 연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기금은 현금이 아니라 주식, 채권, 부동산 등 자산의 형태로 존재한다. 추후 연금지급을 위해서는 이 자산들을 현금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이 말은 미래세대가 그 금융자산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활용가능한 자산의 여유가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기금이 하나도 없다고 해보자. 이 경우에도 미래세대는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 어떻게 하는가? 매달 보험료를 납부하고 그 돈을 분배하여 노후세대에게 연금을 지급한다. 기금이 있는 경우에 연금지급을 위해 주식, 부동산 등의 금융자산을 사는데 돈을 들이는 것이나 기금이 없는 경우에 연금지급을 위해 보험료를 내는데 돈을 들이는 것이나 사실 그 부담의 크기는 동일하다. 오히려 연기금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공적연금제도를 운영하는 나라가 더 많다. 한국 국민연금과 같은 거대 규모 공적연기금이 존재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기금은 오히려 자산을 운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주식이나 채권 등을 매수하고 수시로 리스크 관리를 하는 등 실시간으로 자산운용 비용이 들어간다. 또 나중에 이 자산들을 매도할 때는 유동화의 문제도 발생한다. 이번 제5차 재정계산결과에 의하면 기금의 최대적립시점이 2040년이고 기금소진시점이 2055년으로 양 시점의 차이가 15년으로 추정되었다. 이것은 2018년 제4차 재정계산 때의 16년보다 1년 단축된 것이다. 이는 기금의 최대적립시점부터 기금소진시점까지 기금이 줄어드는 속도가 약간 더 빨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렇게 기금감소속도가 빨라지면 그만큼 기금의 유동화 부담이 커짐을 의미한다. 기금을 적립해두는 것이 미래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기금소진을 피하려면 당장 2050년에 적게는 17% 많게는 23%까지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이렇게 하면 기금이 과도하게 적립되는데 그 중 상당 규모는 자산배분정책에 따라 해외금융시장으로 투입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납부한 돈을 우리 경제에 투자하지 못하고 해외에 투입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는 가계의 소비여력을 감소시켜 내수만 위축시키고 국내금융시장에 별다른 긍정적 기여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기금을 쌓아야만 연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생각은 민간연금식 사고방식이다. 언제든지 상품판매와 영업을 종료할 수 있는 민간보험회사는 지급준비금을 마련해두지 못하면 연금을 지급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만 국민경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공적연금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세대가 충원되기 때문에 기금을 쌓을 필요가 없고 또 기금이 없어도 연금지급에 문제가 없다.
연금재정계산을 통해 우리가 정말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제는 재정계산결과를 가지고 기금소진이니 부과방식비용률이니 하는 민간연금식 사고방식에 기반한 표현으로 재정계산이 주는 함의를 스스로 좁히는 우를 그만둘 때이다. GDP대비 지출비로 표현되는 공적연금 지출 예측치를 통해, 한국사회가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재분배 몫을 어떻게 늘려나갈지 계획해 나가야 한다. 노동소득 등 보험료 부과기반을 넓히는 것 역시 여러 방안 중 하나이다.
또한 5차 재정계산 결과로 제시된 GDP대비 지출비는 고령화가 크게 진전된 다른 나라에 비해 높지 않아 장기적으로 국민연금의 보장성 강화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늘어나는 노인인구와 생산가능연령인구가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지, 그러기 위해서는 노인들은 젊은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젊은 세대는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어떤 재원을 확보하고 대비할 것인지를 모색해야 한다.
특히 노인과 젊은 세대 모두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어떻게 줄여 미래를 대비할 것인지, 어떻게 아이를 낳고 기르며, 인간적인 돌봄과 노동이 가능할 것인지, 어떻게 빈곤하지 않은 노후가 가능할지 등 모든 세대가 함께 할 수 있는 보다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폭넓게 고민할 때이다. 연금재정계산은 단순히 재정을 위한 제도조정이 아니라 이런 미래지향적 고민과 사회의 전환이 정말로 필요하다는 신호를 우리에게 주고 있다.
2023년 1월 27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www.pensionforal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