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되고픈 노인은 없다… 국민연금, 이렇게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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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연금 방빈 기능 강화의 절박성… 우리는 미래에 어떤 노인을 보낼 것인가?

제갈현숙 박사(연금행동 정책위원)

내년이 되면 65세 이상 시민은 1,000만 명을 넘기면서 총인구의 20%를 이상이 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2070년이 되면 인구 2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 시민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미래 전망을 두고 증가할 노인부양비를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사회적 논의가 다양하다. 특히 공적연금을 통한 노후소득보장 수준을 어느 정도를 할 것인지에 관한 사회적 이슈가 뜨겁다. 노후소득보장은 공적으로 강화될 때, 개인이나 가정에서 책임지게 될 사적 부담이 그만큼 감소하게 된다. 노후소득보장은 개인에게 있어 먼 미래에 벌어지는 일이므로 개인에게 전담될 경우, 시민들 각자가 청년기부터 대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 국가는 개인이 책임졌던 노후소득보장을 사회적 부양 방식으로 전환해서 공적연금제도를 마련해서 발전시켜왔다.

두 공적연금의 상호보완적 기능과 중심일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

한국 사회는 서구 국가들보다 60~100년가량 시차를 두고 국민연금을 도입했고, 이제 36년째 운영 중이다. 지역가입자를 포함하여 전국민에게 적용된 지는 25년 되었다. 국민연금이 성숙단계로 나아가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한 상태이다. 그래서 현세대 노인 중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거나, 받더라도 수급액이 적은 노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늦은 도입으로 인한 무연금, 저연금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 2008년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되었고, 2014년부터 기초연금으로 발전되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은 모두 공적연금이지만 재원상 차이가 있다. 국민연금은 사회보험의 원리를 근간으로 가입자들의 보험료를 중심으로 제도가 운영되는 반면, 기초연금은 일반 조세인 국비와 지방비로 구성된다. 이러한 재정의 차이는 수급자 규모의 차이에서 드러난다. 국민연금 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기여하는 최소한의 10년(120개월)의 가입 기간을 충족해야만 연금 형태로 받을 수 있다. 반면 기초연금은 소득과 자산조사를 통해 노인의 소득 하위 70%에게 지급한다. 국민연금은 보험료 기여 이력을 기반으로 하지만, 기초연금은 소득과 자산 수준을 기준으로 할 뿐 기여 이력은 기반으로 두지 않는다. 그렇다면 두 관계 중 어느 제도가 중심성을 갖는 게 유리할까? 단순하게 본다면, 기초연금이 보험료를 내지 않고도 받을 수 있는 급여이므로 더 좋게 보인다. 그러나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관계에서 기여 기반의 국민연금보다 기초연금의 급여 수준을 높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기초연금으로 지급되는 월 30만 원은 국민연금에 10년 가까이 보험료를 내야 받을 수 있는 수준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장기간 국민연금에 기여한 시민과 그렇지 못한 시민이 중에서 기여하지 못했던 시민에게 더 큰 연금을 제공하게 된다면 국민연금은 제도적으로 존립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기초연금 급여 수준은 국민연금 급여의 평균 이상으로 올라가기 어렵다.

재정 측면에서도 문제가 된다. 일부에서는 국민연금 기금의 소진 후, 부담하게 될 보험료 부담 비율만을 내세워 국민연금 보장성보다는 기초연금을 강화를 주장한다. 이것은 국민연금 미래 가입자를 위한 제안처럼 들리지만 사실 공적연금을 통한 소득보장을 줄이자는 주장이다. 국민연금은 미리 보험료를 내며, 급여를 지급하고 남은 연기금으로 후세대 보험료 인상분을 상당 부분 준비자금으로 가지고 있게 된다. 기초연금은 그 해 필요한 예산을 그 해 마련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보장성이 강화되지 못한 채 기초연금에 의존하게 되는 노령인구 규모가 커지면 미래세대가 부담하게 될 세액의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확보할 수 없다면, 기초연금의 부담이 커지고, 이 경우 기초연금에 필요한 재정 책임은 모두 미래세대에게 부담된다. 재정부담의 측면에서도 결코 미래세대를 위한 선택이 될 수 없다.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를 풀고, 빈곤 예방(방빈) 기능 강화

국민연금은 이제까지 두 번의 개혁을 거쳤다. 제도 시행 10년 만인 1988년 정부 주도로 보험료 인상과 법정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췄다. 2차 연금개혁은 2007년 60% 법정소득대체율을 다시 2028년까지 40%로 하향하기로 했다. 두 번의 개혁을 통해 국민연금은 소위 ‘재정안정화’ 조치를 개혁의 핵심에 두기 시작하면서 국민연금제도 본연의 목표인 방빈보다는 연기금 규모를 재정안정으로 진단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그 결과, 시민들은 미래 고갈될 연기금에 대한 각종 논란에 휩싸이면서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각종 오해와 불안이 커져 왔다. 노후소득을 사회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국민연금제도를 둘러싸고 ‘돈’에 대한 얘기가 제도의 본질을 훼손시켜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연금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두 가지를 먼저 풀어보자.

첫째, 국민연금은 적금이나 사보험이 아니다. 즉 보험료를 각자의 계좌에 넣었다가 적립한 후 수급 나이가 되면 돌려주는 방식이 아니다. 공적연금은 노후 소득단절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사회적인 부양제도이다. 이에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인구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노년기 시민의 소득보장을 위해 집합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사회가 유지되는 한 현세대 노년기 시민과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세대간 연대를 통해 제도를 유지할 수 있다. 즉 연기금의 규모가 제도 유지의 핵심이 아니라,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지속되는 사회가 핵심이 된다.

둘째, 이러한 집합적인 소득보장을 위해서는 부과방식을 적용한다. 적금이나 사보험은 각자의 계좌에 돈을 차곡차곡 모은 후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적립된 원금과 이자를 돌려주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적립방식이라 한다. 그러나 공적연금은 적립방식 운영이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사회가 지속되는 한 경제활동인구는 꾸준히 유지되기 때문에 재정에 필요한 비용이 충분히 충당될 수 있다. 오히려 적립방식을 운용할 경우, 적립기금의 미래가치가 보존되기 어려운 인플레이션 문제에 대응이 어렵고, 적립금 규모에 따라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대부분 국가에서는 부과방식을 기반으로 공적연금을 운영하고 있다.

국민연금 제도 시행을 준비했던 전두환 독재정부 시기, 이들은 경제를 위한 자금 동원을 목적으로 보험료를 걷는 데에 관심이 컸다. 당시 시중 은행 금리가 15% 수준으로 자금을 동원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에 3% 보험료에 보장성 70%를 약속한 이유는 이러한 경제 상황과 밀접하다. 노후소득보장보다는 경제적 자금 동원을 위해 국가는 제도 시행 초기부터 완전부과방식이 아니라, 부분적립방식을 선택했고, 오늘날까지 방빈보다 연기금 규모에 더 큰 관심을 둔 역사적 연원은 여기에 있다.

국가가 노후빈곤방지보다 돈에만 관심이 컸던 관계로 대한민국은 2009년 이후로 OECD 회원국 중 노인빈곤율이 가장 높은 나라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인 한국 노인의 빈곤율은 40.4%로 OECD 평균의 3배에 이른다.

의무연금제도: 공적연금+의무가입 민간연금, 한국 저소득자의 소득대체율은 기초연금액 포함

이러한 노인 빈곤의 가장 큰 원인은 공적연금을 통한 소득보장이 낮은 데 있다. 22세에 국민연금에 가입해서 38년 동안 보험료를 낸다는 가정하에 평균임금 소득자(402만 원)의 공적연금(국민연금+기초연금)의 소득대체율은 31.2%인 반면 OECD 평균은 50.7%이다. 즉 노후빈곤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공적연금을 통한 소득보장이 평균임금 대비 절반은 보장되어야 한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실제 수급액은 평균 62만 원이다. 문제는 현재 국민연금의 법정소득대체율을 올리지 않는다면, 1975년생부터 2005년생이 연금을 받게 될 2040년~2070년 사이 연금액은 연금액이 가입자 전체 평균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6~27% 수준으로 여전히 방빈이 어렵다. 많은 경우 미래세대의 부담만을 얘기하지만, 현세대 미래세대 모두 노인이 되면, 빈곤해진다는 점에 더 주목해야 한다.

미래세대를 위한 대안: 법정소득대체율 50% 인상을 전제로 한 보험료 13% 인상

일각에선 평생 국민연금에 기여한 가입자가 미래 수급자가 돼서 받게 될 급여비용이 크다는 이유로 ‘약탈자’로 표현하거나, 역진적 분배라는 주장까지 서슴없이 가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의 본질을 모두 무시한 채, 재정추계 결과만을 호도하며 세대간 갈등을 불 지피는 편협한 주장일뿐이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 중 꾸준히 기여한 가입자는 현세대 노인에게 제공되는 급여 지출을 담당해 주는 재정 책임을 다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능한 많은 가입자가 꾸준히 기여할 수 있도록 국가는 노력해야 한다. 법적, 실질적 사각지대 문제, 특히 노동자성 여부로 사업장 가입이 가로막힌 특수고용형태 노동자, 플랫폼노동자를 포함한 불안정노동자에 대한 사업주 책임을 강제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어디에도 없고, 제도가 역진적이라는 궤변까지 이른다. 두 번째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국민연금은 세대내 재분배 기능이 작동하므로 평균소득 절반 수급자에겐 기초연금을 포함한 소득대체율이 47.6%, 평균소득자에게 31.2%, 평균임금 두 배 소득자에게 18.8%로 평균소득이 낮을수록 더 높은 소득대체율을 보장한다. 제도의 취지를 살리려면, 소득이 낮은 가입자들이 꾸준히 가입 기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재정론자들은 역진성을 내세워 국민연금 축소와 기초연금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기초연금의 급여수준은 결코 국민연금의 평균 급여 수준보다 높아질 수 없고, 이러한 점에서 그 주장은 저소득층에 대한 낮은 급여를 오히려 종용하는 것이다. 결국 재정론자들의 주장은 공적노후소득보장 기능을 줄여서 사적으로 그 책임을 넘기려는 의도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2022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인구 중 기초생활수급자의 비율은 11%, 기초연금수급자 비율은 67.4%, 국민연금은 2023년 12월 기준으로 51.2%이다. 이 중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기초연금은 조세로 지원되고, 약 21조7천억 원이 빈곤한 노인에게 지급된다. 반면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이 기여한 보험료 재정으로 충당되고 2023년에 약 39조 원이 지급되었다. 만약 국민연금의 법정소득대체율을 올리지 않는다면 국가재정으로 지출할 비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세금으로 낼 비용은 온전히 미래세대의 부담이지만, 국민연금은 준비금이 마련되어 있어서 미래세대의 부담을 일부 현재부터 적립하고 있다. 미래세대의 노인부양 부담은 증가하게 되는데 이때 국민연금으로 60만 원 받는 노인과 100만 원 받는 노인 중 어떤 노인이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노인으로 볼 수 있나? 현재도 미래도 모든 노인은 자식에게 짐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국민연금으로 적어도 100만 원 이상 받아서 최소생활비만큼이라도 보장된다면, 오히려 미래세대만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 또한 인구의 절반 가까운 노년기 시민의 소비 규모는 결국 내수 경제 규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되므로 GDP 대비 적정 자원이 배분되도록 살펴야 한다.

미래에 빈곤한 노인을 보낼 것인지, 공적연금을 통해 방빈할 수 있는 노인을 보낼 것인지에 대한 시민들의 논의가 시작된다. 연금개혁 공론화위원회로 위촉된 500인의 시민대표단이 4월 13일, 14일, 20일, 21일 4차례에 걸쳐서 진행될 계획이다. 국민연금 개혁 역사상 최초로 시민 참여를 정책 결정 과정에 포함한 뜻깊은 시도이다. 시민의 참여로 국민연금이 공적연금으로서 본연의 취지에 부합할 수 있는 개혁안이 도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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