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페이퍼 2024-6호 보건복지부의 누적적자 거론, 국민 뜻 거스르는 개혁안 만들려는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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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공론화 의제 대안 재정추계’를 통해 공론화의 핵심 의제인 소득보장 대안1이 “현재보다 재정을 더 악화시켜 재정안정을 위한 연금개혁 목적에 부합하지 않고, 미래세대 부담만 가중”시킨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이 주장의 근거로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각각 13%와 50%로 올린 대안1에서 현행과 비교해 1,004조원 증가한 누적수지 적자 규모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 누적적자 개념은 객관적인 지표로 사용하기에는 결함이 있는 것인데, 보건복지부는 국민에게 익숙하지도 않은 이 개념을 불쑥 들이밀어서 국민연금이 심각한 적자 문제를 안고 있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이번 보도자료에 누적적자를 포함시킨 것은 비판을 면키 어렵다. 

첫째, 이 누적적자 지표는 미래 재정상태를 정확히 이해하게 해주는 ‘객관적이고 과학적 지표’가 아니다. 누적적자 수치는 국민연금이 미래 적자를 보기 시작하는 때를 기점으로 해서 이후 발생하는 모든 적자(재정계산의 미래 전망치 활용)를 더해서 만들어졌는데 일부 재정안정론자들이 국민연금이 가진 재정 불안정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 지표 만한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객관적’인 지표라고 부를 수 없다. 그 이유는 적자가 많다 혹은 적다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통은 일반적인 기준으로서 소득이 사용된다. 어떤 사람이 빚이 100이 있다고 하자. 소득이 10인 사람에게는 많지만 1000인 사람에게는 문제가 아니다. 객관적 재정상태 지표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적자 규모를 소득이라는 기준에 비교하는 지표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재정상태 지표(즉 미래 기금고갈 시점 이후 발생할 GDP 대비 적자 규모 지표)는 이미 재정계산 보고서에 포함되어 있다. 재정안정론자들이 주장하는 누적적자 개념은 객관적인 재정상태 지표라고 보기 어렵고 바람직한 지표(GDP 대비 지표)는 이미 발표되어 있고 시민 대표단에게 이미 공개되었다. 

둘째, 물론 누적적자 개념이 가진 이러한 근본적인 한계를 인정하면서 그래도 참고 차원에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수치는 기본을 지키지 못하고 엉망으로 만들어졌다. 누적적자 값을 도출하려면 언제까지의 적자를 누적할 것인지(평가기간)와 미래 적자를 어떤 할인율을 사용해서 현재 가치로 만들 것인지(할인율)를 객관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즉 누적적자는 기금 소진 이후에 발생할 적자를 계속 더한 것인데 어느 시점까지 누적할지, 미래 100만 원이 현재 어느 정도라고 보는 것이 맞을지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미래 어느 시점의 100만 원이 현재의 100만 원과 같을 수 없기 때문임).  

특히 어떤 할인율(즉 미래 시점의 적자 값을 현재가치화 하기 위해 선택하는 요소)을 쓰는가가 누적적자를 도출하는 데 핵심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연구보고서 ‘국민연금 부채 산출방법 연구’도 연금부채(즉 누적적자) 산출에 있어서 평가기간과 할인율에 따라 부채 산출값이 크게 변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유럽통계청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할인율의 2~3%p 변경으로 연금부채 규모가 20%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밝혔다. 투자를 통해 매년 5%의 수익률을 얻는다면 현재의 100만원은 70년 후 2,897.8만원이 되기 때문에 5%의 할인율을 적용하면 70년 후의 부채 3천만원의 현재가치는 약 100만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이번 보도자료에서 2093년까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되는 누적적자를 아무 할인율도 적용하지 않고 그냥 더한 것을 발표했다. 보고서에 작은 글씨로 표와 그림에 표시된 “경상가”는 물가상승률을 조정하지 않은 각 연도별 명목 금액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할인율을 사용해서 현재가치화 해야 한다는 경제 논리의 기본을 무시한 것이어서 매우 심각하다. 

셋째, 보건복지부가 보도자료에서 대안1이 야기할 누적적자를 거론하면서 서로 다른 두 개의 값을 제시했다. 그 두 개는 제5차 재정추계 결과를 이용해서 보건복지부가 도출한 값과 일부 재정안정론자가 대안1을 공격하기 위해 인용한 국회 예산정책처의 비공개 보고서 자료의 값인데, 이 둘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것 자체가 누적적자 개념이 자의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보건복지부가 신중한 검토 없이 누적적자 개념을 들고 나왔다는 것을 방증한다.

누적 적자는 법률에 따라 5년마다 행해진 재정계산에서 공식적인 재정상태 평가 지표로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던 지표이다. 국회의 주도로 심도 있는 학습을 거친 시민대표단의 숙의와 토론을 거쳐 민주적 절차에 의해 수렴된 의견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공신력 있고 검증된 기준이 적용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점에서 갑작스럽게 정부의 보도자료에 사용되어서는 안되는 지표이다. 특히 검증되지 않고 타당성이 결여된 누적적자 추정치를 근거로 재정 공포 프레임을 확산시키려는 일부의 주장은 이미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이번에 보건복지부가 누적적자 개념을 갑작스럽게 들고 나온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행위이다. 

보건복지부가 이렇게 무리스러운 일을 벌이는 것은 공론화 결과가 정부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시민들이 공론화를 통해 제시한 뜻과는 전혀 다른 연금개혁안을 들고 나오기 위한 분위기 조성 작업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참고: 국민연금 누적적자, 합리적 개혁을 막는 매우 왜곡된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