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민간보험에나 적용될 지표들로 연금개혁 가로막는 정부・여당은 반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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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7일 연금개혁 협상을 무산시킨 주범인 여당의 유경준 의원은 복지부가 계산한 자료의 일부를 뽑아 ‘보험료와 소득대체율 조정에 따른 재정추계 결과’라는 자료를 발표하였다. 여기에는 이른 바 필요보험료율이니 수지균형보험료니 누적적자니 하는 수치들이 나와 있다. 그러면서 마치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엄청난 보험료를 내야 하고 엄청난 적자가 쌓일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저들은 필요보험료니 수지균형보험료니 부과방식비용률이니 누적적자니 하는 지표들의 본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들 지표들은 국민연금의 재정이 가입자들이 납부하는 보험료 수입으로만 충당되어야 한다고 전제한 지표들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그 보험료를 근로연령인구가 만들어내는 근로소득에만 부과하고 있는데 그 근로소득 즉 국민연금 보험료의 부과대상이 되는 근로소득은 근로소득의 전체도 아니고 GDP의 30% 밖에 안되는 근로소득이다. 게다가 저들은 입만 열면 미래에는 인구고령화로 근로연령인구가 줄어든다고 말한다. 근로연령인구가 줄어드니 그 줄어드는 근로연령인구가 만들어내는 근로소득도 당연히 줄어든다. 그래서 보험료 부과대상 근로소득도 줄어든다. 작년 5차 재정계산에서는 보험료 부과대상 근로소득이 2060년대 이후에는 GDP의 26% 정도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었다. 그런데 2060년대 이후 국민연금지출을 GDP 대비로 보면 6~8% 정도이고 가장 많을 때인 2080년에도 GDP의 9.4% 정도이다. GDP의 9.4% 밖에 안되는 연금지출을 GDP의 30%도 안되는 근로소득에서 모조리 충당하려니 보험료가 30%니 35%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필요보험료니 수지균형보험료니 부과방식보험료니 누적적자니 하는 지표들은 모두 민간보험회사들이나 사용하는 지표들이다. 민간보험회사는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기들 보험상품에 가입한 사람들이 내는 보험료 수입과 보험급여로 나가는 지출을 비교해야 한다. 그래서 그 보험료 수입과 보험급여 지출을 비교하여 보험급여지출을 충당하는 데 필요한 보험료율을 필요보험료율이라 하고 그 수입과 지출을 똑같이 맞추는 보험료율을 수지균형보험료율이라 하며 보험급여지출을 보험료 수입에서만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가정했을 때의 보험료율을 부과방식비용률이라 하는 것이다. 거기다 보험급여 지출과 보험료 수입 간의 차액을 적자라고 부르면서 그 적자를 매년 더한 것을 누적적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개혁안에 따른 국민연금의 재정상황을 평가하는데 사용된 이들 지표는 모두 연금 가입자 개인이나 제도 전체의 재정 부담을 과대 추정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우선 수지균형보험료율은 평균적인 개인이 수급할 급여의 현재가치 총액과 납부할 보험료의 현재가치 총액을 동일하게 해주는 보험료율로 국민연금 전체의 수지 균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할인율에 따라 변동성이 큰 수지균형보험료율의 계산에 사용된 할인율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은 이 지표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또한 수지균형보험료율에는 납부한 보험료가 기금에 적립되어 발생하는 기금운영수익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납부한 총보험료와 수급한 총급여의 현재가치를 동일하게 만드는 보험료율이 과대추정되어 있다. 

누적적자는 수지균형보험료율과 마찬가지로 할인율에 따라 변동성이 매우 큰 지표로서 국민연금 재정계산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거나 발표되지 않는다. 그런데 보건복지부의 보도자료에는 물가상승률조차 고려되지 않은 경상가 기준으로 계산된 천문학적 금액의 누적적자가 발표되어 국민의 공포를 가중시켰다. 한편 급여 지출을 보험료 수입으로만 충당한다는 가정하에 보험료 수입 기반 대비 급여 지출 비중을 나타내는 필요보험료율은 연금 재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기금의 존재나 국고의 투입 여부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지표이다. 그리고 GDP의 약 30%에 달하는 국민연금 보험료 부과기반을 자본소득 등으로 확대하면 필요보험료율은 감소하게 된다.

국가는 민간보험회사가 아니다. 국가가 운영하는 공적연금은 가입자의 근로소득에서만 재정을 충당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우리보다 공적연금을 훨씬 일찍 운영해온 유럽국가들의 예에서도 알 수 있다. 유럽 국가들은 지금도 GDP의 10% 가까이를 연금에 지출하고 있다. 그런데 재정론자들의 말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은 벌써 보험료가 30%를 넘어야 할텐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런가? 연금지출을 가입자들의 근로소득에서만 충당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틀린 전제이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은 지금도 연금지출의 1/4 가량을 국고에서 지원하고 있다. 일부 논자는 이 1/4의 국고지원이 크레딧 지원이라고 말하는데 이건 실제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크레딧 지원만으로는 연금지출의 1/4이 되지 못한다. 연금지출의 1/4 국고지원은 크레딧을 포함하여 연금지출 일반에 대한 지원이 더 큰 몫을 차지하기 때문에 나오는 수치이다. 유럽 국가들은 어떻게 하여 연금지출의 1/4을 국고에서 지원하는가? 어렵지 않다. 그렇게 제도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한다. OECD나 EU에서 발간하는 공적연금 문헌 중 필요보험료니 수지균형보험료니 부과방식비용률이나 누적적자니 하는 지표들을 이야기하는 문헌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만 이 지표들이 마치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 양 이야기한다.

재정론자들과 일부 언론, 그리고 일부 전문가들은 가입자들의 근로소득에서 걷는 보험료로만 운영할 수밖에 없는 민간보험회사의 보험상품에나 적용될 지표들을 금과옥조처럼 되뇌인다. 그것은 마치 조선 후기 신분질서가 문란해지면서 양반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농민들에게만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양반들에게도 세금을 부과하게끔 제도를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지금부터 세금을 더 올려내지 않으면 대궐창고에 창고문이 터져나가도록 쌓아둔 보화가 고갈되고 그러면 미래세대에게 엄청난 부담이 전가된다고 농민들을 협박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농민들에게 생소한 필요세율이니 수지균형세율이니 부과방식세율이니 따위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작년 재정계산위원회에서 한 인사가 회의 때마다 누적적자 이야기를 하니 재정안정론을 지지하는 한 재정계산위원이 듣다 듣다 “아니 왜 적자를 더하시냐? 적자는 매년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이 되는 것이지 그걸 왜 더하냐?”고 말했다. 사실 그 발언으로 누적적자 개념은 파탄난 것이다. 그런데도 그 인사는 계속 누적적자 얘기를 하고 언론은 그걸 받아쓴다. 필요보험료니 수지균형보험료니 부과방식비용률은 민간보험회사에서나 사용할 지표들이어서 공적연금에는 적용할 수 없는 지표들이고 누적적자는 애초에 개념이 성립하지 않으며 학계에서는 그걸 매일 주장하는 그 인사 외에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개념이다.

이번 연금개혁 공론화에서 시민들은 공론화 과정에 가장 도움이 안 된 것으로 언론을 꼽았다. 국민연금에 적용할 수 없는 지표들로 제도 불신만 조장하는 언론은 사실상 언론이라 부를 수도 없다. 우리 사회는 인구구조의 변화로 가입자들의 근로소득에만 부과하는 보험료만으로는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점점 나아가고 있다. 근로소득 이외의 재원에서 재정을 마련하기 위한 제도개선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번 연금개혁 공론화에서 시민대표단은 사전국고투입을 통해 미래세대의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했고 플랫폼과 원청기업에 사용자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크레딧 강화에도 높은 지지를 보냈다. 공론화의 이런 결정들은 가입자들의 보험료 수입 외에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라는 시민들의 뜻이다. 이런 결정을 무시하고 민간보험에나 적용될 지표를 들먹이며 연금개혁협상을 결렬시킨 정부여당은 역사에 두고두고 지탄을 받을 것이다.

2024년 5월 9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www.pensionforall.kr)

부록

  • 필요보험료율(부과방식비용률): 연금급여지출을 보험료 수입으로만 충당해야 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보험료율인 부과방식비용률과 동일한 개념; 특정 시점 t년도에 계산된 필요보험료율은 다음 식을 통해 계산됨:

필요보험료율은 기금의 존재나 국고의 투입 여부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지표로 급여지출에 필요한 비용 부담이 보험료 부과기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냄. 제5차 재정계산에 따르면, 2030년과 2040년의 필요보험요율(부과방식비용율)은 15.1%와 22.7%이고, 기금이 소진되는 2055년의 필요보험료율은 26.1%로 꾸준히 상승; 또한 국민연금보험료 부과대상은 피용자보수의 약 50% 수준으로 GDP의 약 30%를 차지하는데, 이 보험료 부과기반이 자본으로 확대되면 필요보험료율은 감소하게 됨; 한편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 9%라는 것은 GDP의 30% 정도 밖에 안되는 근로소득에 매겨지는 비율이 9%라는 의미임. 따라서 GDP의 30% 정도 크기에 9% 보험료를 부과하므로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 보험료 수입은 GDP 대비 3% 정도임. 앞으로 국민연금지출은 늘어나는 반면 근로소득의 크기는 GDP의 30% 아래로 점차 하락할 것인데 재정론자들은 이렇게 GDP의 30% 아래로 내려가는 근로소득에서만 연금급여지출에 필요한 재정을 모두 걷어야 한다고 전제하는 것임. 이렇게 하니까 보험료가 30%다, 35%다 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인데 이는 지속가능하지 않음.

  • 수지균형보험료율: 평균적인 개인이 수급할 것으로 예상되는 급여의 현재가치 합계와 이 개인이 국민연금 가입기간 동안 납입할 보험료의 현재가치 합계를 동일하게 만들어주는 보험료율; 평균소득자인 개인 ‘을’이 국민연금에 25년간 가입해 보험료를 납부하고 20년간 급여를 수급한다고 가정하였을 때 수지균형보험료율의 계산식은 다음 과 같음:

보험가입자의 개인계좌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경우에만 유효한 개념으로 국민연금 전체의 수지 균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개념이며 개인계좌를 설치하지 않는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에는 기본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개념; 설사 공적연금에 억지로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현재가치 계산을 위한 할인율에 따라 수지균형보험료율 값은 크게 달라짐. 구체적으로 위 식의 분자부분은 은퇴 후 먼 미래의 20년을, 분모부분은 현재와 가까운 은퇴 이전의 20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할인율이 커지면 현재와 더 멀리 떨어진 분자부분이 더 크게 감소하여 수지균형보험료율이 하락; 무엇보다 수지균형보험료율에는 납입된 보험료가 기금으로 운영되고 그에 따라 거두게 되는 기금운용수익이라는 기회비용이 반영되지 않았는데 만약 이러한 기회비용이 반영되면 수지균형보험료율은 현재보다 크게 낮아질 것임. 

  • 누적적자: 국민연금이 현재 근로소득에만 부과하는 보험료 9%를 향후 70년 동안 그대로 유지한다고 가정했을 때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보험료 수입과 급여지출 간의 차액을 연도별로 모두 더한 값. 하지만 이는 근로소득에서만 연금지출비용을 마련한다는 전제 하에 발생할 수도 있는 적자를 더한 것으로 이렇게 더하려면 같은 기간의 수입도 더해야 함. 왜냐하면 어떤 적자가 큰지 작은지를 보려면 수입과 비교해야 하기 때문임. 예컨대 매출액이 1백억원인 기업에 10억원 적자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매출액이 1천억원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음. 국민연금 재정계산상 적자가 발생하는 기간의 적자를 모두 더하고 같은 기간의 GDP도 모두 더하여 누적 GDP로 누적적자를 나누면 대체로 5~6%인데 이는 이미 재정계산에서 말하는 적자규모와 유사함. 이 정도 적자규모는 우리가 충분히 감당 가능함.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이슈페이퍼 2024-6호 “보건복지부의 누적적자 거론, 국민 뜻 거스르는 개혁안 만들려는 꼼수” 참고